유저가 노력할수록 보답하는 이어폰, 브리즈 오디오 이부키
브리즈오디오 이부키의 드라이버 구성과 착용감, 소스에 따른 저역 제어 차이를 들었습니다. 와타츠미 앰프와 거치형 앰프 매칭에서 드러난 장단점을 정리합니다.

브리즈오디오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일본의 하이엔드 커스텀 케이블 제조사입니다. 저 역시 케이블과 포터블 앰프로 익숙했던 브랜드인데요. 2024년에는 기존에 만들지 않았던 새로운 카테고리의 제품을 선보였습니다. 이어폰 시스템인 후가쿠입니다.
굳이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후가쿠는 이어폰 유닛에 드라이버를 넣고, 크로스오버와 증폭 회로 등 나머지 구성을 외부의 전용 기기로 분리했습니다. 그래서 이어폰과 전용 케이블, 편의상 앰프라고 부르는 외부 기기까지 세 부분이 한 세트를 이룹니다. 다른 이어폰이나 케이블을 자유롭게 연결하는 범용 구성은 아니고요. 하이파이에서 섀시를 나눠 분리형 시스템을 만드는 방식이 이어폰에도 적용된 셈입니다.
당시 2천만 원 중반대의 가격도 화제였습니다. 단순한 이어폰 하나의 가격으로 보면 놀랄 수밖에 없지만 케이블과 앰프까지 포함한 시스템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합니다. 물론 어떻게 계산하든 비싼 제품이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부키 이야기를 하면서 후가쿠부터 꺼낸 건, 바로 이 제품이 있었기 때문에 이부키가 나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후가쿠의 경험을 일반적인 이어폰으로
후가쿠를 선보인 뒤에는 조금 더 간소화된 제품을 원하는 요청이 많았다고 합니다. 가격 부담도 줄이고 전용 시스템 없이 보통의 이어폰처럼 사용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지요. 그렇게 개발한 제품이 이부키입니다. 함께 살펴본 와타츠미 앰프 역시 후가쿠를 개발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생했다고 하고요.
젠하이저가 오르페우스라는 상징적인 시스템을 개발한 뒤 그 경험을 다른 제품에 활용했던 것처럼, 브리즈오디오에도 후가쿠는 새로운 제품을 만들어 낼 계기가 됐던 듯합니다. 다만 이부키를 단순히 앰프만 뺀 후가쿠로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전용 외부 회로 없이 작동하도록 만들려면 내부 설계부터 바꿔야 하니까요. 외형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이어폰으로 보는 편이 맞습니다.

본체는 후가쿠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범용 케이블을 사용할 수 있도록 단자부가 달라졌지만 전체적인 생김새는 거의 같습니다. 유닛은 티타늄 소재이며 한쪽 무게가 17g을 조금 넘습니다. 제법 묵직한 유닛을 이어팁만으로 고정하기보다는 귀에 단단히 걸어 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는지 별도의 이어 후크가 달려 있습니다.
덕분에 한번 정착용하면 안정적으로 고정됩니다. 후크 각도도 조절할 수 있어 안경을 쓰지 않는 제 경우 착용감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반면 안경을 함께 쓰는 분이라면 착용 과정이 꽤 번거로울 듯합니다. 후크 때문에 전체 부피도 커져 전용 케이스가 작은 헤드폰 케이스처럼 느껴질 정도예요. 휴대성을 우선하는 분에게는 분명한 부담입니다.
아홉 개의 드라이버, 달라진 트위터

케이블 연결에는 펜타콘 단자를 사용합니다. 다만 교체 케이블을 고를 때는 단자뿐 아니라 케이블이 내려오는 방향도 살펴야 합니다. 이부키는 케이블을 귀 위로 넘기는 방식이 아니라 아래로 곧게 떨어뜨리는 형태입니다. 귀에 거는 모양으로 성형된 케이블도 그대로 아래로 내릴 수는 있겠지만 외형과 착용감이 어색해질 수 있을 테고요.
내부에는 총 아홉 개의 드라이버를 사용했습니다. 저역의 8mm 다이내믹 드라이버 두 개와 중저역·중역·고역에 각각 한 개, 두 개, 두 개씩 배치한 BA 구성은 후가쿠와 같습니다. 대신 다이내믹 드라이버는 개선된 버전 2를 사용했고, 초고역은 후가쿠의 MEMS 대신 EST 두 개가 담당합니다. 그 결과 드라이버 수는 후가쿠의 여덟 개에서 아홉 개로 늘었습니다.
이 변화도 제품의 구성 방식과 연결됩니다. 후가쿠는 MEMS 구동을 위한 회로를 외부 기기에 배치할 수 있었지만 이부키는 유닛 안에서 구성을 끝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후가쿠 개발 당시에도 EST를 검토했다고 합니다. 다만 EST의 코일부를 외부 기기에 두고 드라이버까지 길게 연결하면 성능이 떨어져 자신들의 분리형 설계와 맞지 않았다는 설명입니다. 이부키에서는 상황이 바뀌었으니, 처음 검토했던 방식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액티브 크로스오버 VS 패시브 크로스오버

더 큰 차이는 크로스오버에 있습니다. 여러 드라이버에 각각 어떤 주파수 대역을 맡길지 나누는 회로인데요. 후가쿠는 신호를 먼저 대역별로 나눈 뒤 각각의 앰프단에서 증폭해 해당 드라이버로 전달합니다. 반면 이부키는 앞단에서 이미 증폭한 신호를 받아 이어폰 내부의 패시브 크로스오버에서 나눕니다.
후가쿠는 각 대역의 증폭까지 따로 다룰 수 있지만 이부키는 코일과 커패시터 등으로 구성한 회로 안에서 대역과 드라이버 간 균형을 맞춰야 합니다. 때문에 후가쿠에서 얻었던 결과를 일반적인 이어폰 구조로 옮기려면 크로스오버의 완성도가 중요했을 듯합니다. 브리즈오디오도 이부키의 5웨이 고정밀 크로스오버와 부품 선별을 강조하며, 내부 배선에는 자사의 순은선을 사용했다고 설명합니다.
기본 케이블은 아카가네35 선재를 바탕으로 이부키 전용 튜닝을 더했다고 합니다. 만듦새와 유연성 모두 준수했고요. 브리즈오디오가 원래 케이블로 이름을 알린 브랜드인 만큼 우선 기본 케이블로 충분히 들어 본 뒤, 원하는 변화가 분명해졌을 때 교체를 고민해도 늦지 않겠습니다.
안내된 구성품은 본체와 케이블, 가죽 하드 케이스, 아즈라 세드나 맥스 이어팁 여섯 쌍, 케이블 정리 클립과 파우치입니다. 이번에는 구성품 전체를 받지 않았으므로 패키지에 대한 사용 평가는 생략하겠습니다. 스펙상 주파수 대역은 5Hz~50kHz, 임피던스는 1kHz 기준 11Ω입니다. 감도는 표시돼 있지 않지만 DAP만으로도 볼륨 확보는 어렵지 않았습니다. 다만 볼륨이 충분하다는 것과 만족스러운 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였습니다.
관건은 저역 컨트롤이다

이번에는 스트림으로부터 이부키와 함께 브리즈오디오가 권장하는 와타츠미 앰프도 대여받았습니다. 소스는 아스텔앤컨 PD10이며 파일 재생과 애플뮤직을 섞어 들었습니다. 우선 와타츠미와 무라쿠모3 미니케이블을 연결해 제가 확인한 이부키의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냈을 때의 소리를 설명하고, DAP 단독 연결에서 무엇이 달랐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느껴지는 특징은 저역의 양입니다. 서브우퍼를 달아 둔 것처럼 풍성하고, 상당히 낮은 대역까지 내려가 무겁게 깔립니다. 다만 여기서는 저역의 양감과 질감을 나눠 볼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이 저역이 많더라도 그 소리가 풀어지는지, 단단하게 맺히는지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거든요. 이부키는 이 부분이 전체 만족도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DAP 단독 연결과 와타츠미를 거친 소리의 차이는 예상보다 컸습니다. PD10이든 SP4000이든 제가 가진 플레이어에 바로 연결한 상태만으로 평가했다면 가격을 생각해서 좋은 이야기를 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반면 저역이 제대로 잡히면 왜 이 제품이 높은 가격대에 자리하는지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미니케이블에 따라서도 저역의 질감과 중역의 밀도가 달라져 신경 쓸 부분이 많았고요.
그렇다고 반드시 와타츠미만 써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거치형 앰프에 연결했을 때도 차이가 분명했습니다. 볼륨을 더 크게 내기 위해서라기보다 풍성한 저역을 단단하고 빠르게 정리하는 앰프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제가 듣기에는 하이파이에서 앰프가 스피커의 저역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때 소리가 풀어지는 현상과 비슷했습니다.
이 차이를 확인하기 좋았던 곡은 다프트펑크의 앨범 Random Access Memories에 수록된 ‘Doin’ It Right’입니다. 평소 스피커를 테스트할 때도 저역의 부밍을 살피려고 종종 듣는 곡인데요. 도입부를 조금 지나면 대략 80Hz, 100Hz, 60Hz 부근의 저역 비트가 차례로 반복됩니다. 이부키를 DAP에 바로 연결하면 이 비트들이 전체적으로 부풀어 들렸습니다. 특히 셋 중 가장 낮은 비트가 나올 때는 방에서 부밍이 생긴 것처럼 소리가 부르르 떨리며 지저분하게 남았습니다. 저역의 양이 많은 것 자체보다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이 문제였어요.
반면 와타츠미에 연결하면 비트가 눈에 띄게 단단하고 빨라집니다. 양은 여전히 많지만 밀도가 잡히고 맺고 끊음이 정확해지니 이번에는 펀치가 좋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서 느꼈던 지저분함이나 다른 대역을 가리는 인상도 사라졌고요. 같은 이어폰의 많은 저역이 한쪽에서는 단점으로, 다른 쪽에서는 매력으로 작용하는 셈입니다.
와타츠미는 이런 역할을 잘해 줬습니다. 제조사가 두 제품의 매칭을 고려했다고 하는데, 실제로도 이부키의 저역을 다루는 데 잘 맞았습니다. 앰프 자체도 포터블 제품 가운데 상급으로 꼽을 만한 질감과 두께, 밀도와 공간 표현을 보여 줬고요. 그렇기 때문에 이부키를 청음할 때는 소리가 충분히 크다는 이유만으로 구동 조건까지 만족했다고 판단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역이 어떻게 시작되고 정리되는지까지 들어 보셔야 이 제품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겁니다.
저역이 이렇게 풍성한데도 제어가 잘되면 중역과 고역이 묻히지 않는다는 점이 재미있습니다. 각 음상의 존재감이 또렷하고 힘도 충분히 실립니다. 안드리스 넬슨스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 5번을 들었을 때 이 장점이 잘 드러났습니다. 1악장부터 장엄하게 진행되면서 조용한 부분과 크게 몰아치는 부분이 반복되니 저역의 양감만으로는 제대로 들려주기 어려운 곡이지요.
이부키와 와타츠미 조합은 그 강약과 분위기를 상당히 설득력 있게 표현했습니다. 총주에서 아래쪽을 우르릉 받치는 베이스는 무대의 깊이와 확산감을 살렸고, 그 위로 현악기와 관악기가 듬직한 음선을 유지하며 뻗어 나왔습니다. 특히 트럼펫 솔로의 표현이 매력적이었습니다. 낮은 대역이 풍성하다고 다른 악기들이 뒤로 밀리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현대적인 장르처럼 극저역 비트가 계속 강조되는 곡이 아니다 보니 많은 저역이 과장으로 다가오기보다 무대를 든든하게 받치는 토대가 됐습니다. 이어폰 가운데서도 상당히 큰 스케일이며 특히 좌우 너비는 최상급으로 느껴졌습니다. 셈여림과 음상의 맺힘까지 함께 살펴보면 제 기준에서는 100점 만점에 90점 이상을 주고 싶은 조합이었습니다.

다만 상하 높이는 조금 아쉽습니다. 좌우로 넓게 펼쳐지는 것에 비해 공연장의 천장이 높게 열리는 느낌은 상대적으로 덜했습니다. 이 곡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좌우와 뎁스에는 강점이 있지만 위아래가 약간 눌린 듯한 무대를 만들 때가 있었습니다. 넓다는 표현만으로 공간감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잖아요. 이부키에서는 가로의 확산과 전후 깊이에 비해 세로 방향이 덜 살아난다는 점을 함께 보시면 좋겠습니다.
개성이 분명한 올라운더

음색만 놓고 보면 이부키는 극저역과 저역이 강조된 이어폰입니다. 다만 그 성향 안에서도 중역의 에너지와 고역의 잔향을 충분히 살려 준다는 점에서 고급기의 완성도가 드러납니다. 저역이 풍성하면서도 무대가 넓고, 그 안에서 다른 악기들의 질감까지 놓치고 싶지 않은 분에게는 상당히 매력적인 소리일 듯합니다.
클래식을 들으면 셈여림과 잔향, 악기 간 균형을 잘 표현하다가도 현대적인 장르에서는 서브우퍼 같은 저역이 박력 있게 튀어나옵니다. 그래서 제게는 다른 의미의 올라운더로 느껴졌습니다. 음색의 개성은 분명한데 그 특징이 여러 장르에서 제법 맛깔나게 작용하거든요. 다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평가에는 저역이 잘 제어되는 매칭이라는 조건이 붙습니다.
포터블 환경에서는 와타츠미가 좋은 출발점이 돼 줬고, 함께 비교한 브리즈오디오의 두 가지 미니케이블 중에서는 무라쿠모3가 제 취향에 확실히 더 잘 맞았습니다. 소스 기기는 아스텔앤컨 제품들로만 들어 봤으므로 다른 플레이어까지 포함한 최적의 조합은 더 살펴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 정도 이어폰이라면 거치형 환경에서 전용으로 사용할 헤드폰 앰프를 고민해 볼 만도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진공관의 질감을 더하는 방향보다 출력에 여유가 있고 스피드와 밀도를 잘 잡아 주는 TR 앰프 쪽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부키가 가진 많은 저역을 더 부풀리기보다 단단하게 다루는 쪽이 잘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 역시 제가 들어 본 조합에서 느낀 방향이니, 실제 선택할 때는 함께 사용할 앰프로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겠습니다.
총평

이부키는 매칭이 갖춰졌을 때의 저역 제어감과 좌우 무대 확산이 특히 인상적인 이어폰이었습니다. 풍성한 저역이 빠르고 단단하게 맺히면서 중역과 고역도 힘을 잃지 않는다는 점은 최근 들어 본 동급 제품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습니다. 다만 그 소리를 얻기 위한 준비가 만만하지 않고, 큰 유닛과 이어 후크가 주는 휴대·착용상의 부담도 고려해야 합니다.
앰프와 미니케이블, 소스 기기까지 욕심을 내다 보면 결국 후가쿠에 가까운 수준의 투자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면 차라리 후가쿠로 한 번에 가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두 제품을 직접 맞비교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후가쿠와 이부키는 크로스오버와 구동 방식부터 다른 제품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하고요.
이부키는 일반적인 이어폰처럼 연결할 수 있도록 구성을 간소화했지만, 좋은 소리를 내기 위한 매칭까지 간단한 제품은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시스템을 하나씩 맞춰 가는 과정을 즐긴다면 충분히 흥미로운 대상이 될 듯합니다. 저역의 양만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저역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는지, 넓게 펼쳐진 무대 안에서 다른 악기들이 어떻게 살아나는지를 함께 들어 보셨으면 합니다. 그 차이를 확인한 뒤에야 이부키가 자신의 취향과 사용 방식에 맞는지 판단하기 쉬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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