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와 컨슈머의 경계를 허물다 - 오디지 MM-520
오디지 MM-520의 SLAM 구조와 이어패드 변화, 실제 청감에서 달라진 저역·잔향을 살펴봤습니다. MM-500과 비교해 작업용과 감상용 사이의 균형을 짚습니다.

오디지를 대표하는 헤드폰이라면 먼저 LCD 시리즈가 떠오릅니다. 오래전부터 브랜드의 성장을 이끈 컨슈머 라인업이고, 특유의 평판형 사운드로 지금의 오디지를 만든 제품군이기도 하지요. 반면 MM 시리즈는 출발점부터 목적이 조금 달랐습니다. 다수의 그래미 어워드를 수상한 믹스 엔지니어 매니 매로퀸과 함께 실제 현장에서 사용할 작업용 헤드폰으로 개발한 프로 라인업입니다.
물론 유명 엔지니어의 이름만으로 제품을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전문가와의 협업은 신뢰를 더하는 마케팅 요소가 되기도 하니까요. 다만 자신의 이름과 커리어를 걸고 튜닝에 참여한 만큼 방향성만큼은 명확했을 겁니다. 실제로 첫 모델인 MM-500은 매니 매로퀸이 믹싱 작업에 사용한 헤드폰으로 알려졌고, 출시 후 반응도 상당히 좋았습니다.
기존에도 오디지에는 LCD-X처럼 작업용으로 활용되는 제품이 있었습니다. 다만 LCD 라인업 안에서 튜닝의 폭을 넓힌 제품과 처음부터 프로 현장을 겨냥해 출발한 MM 시리즈는 개발의 시작점이 다릅니다. 이후 보다 접근하기 쉬운 MM-100이 나왔고, 이번 MM-520은 MM-500의 뒤를 잇는 후속작으로 4년 만에 등장했습니다.
SLAM 전과 후로 나뉘는 오디지의 세대

외형의 큰 틀은 익숙합니다. 하지만 이어컵과 이어패드 사이를 살펴보면 MM-500에는 없던 금속 링이 하나 보입니다. 이것이 이번 변화의 핵심인 SLAM입니다. ‘Symmetric Linear Acoustic Modulator’의 약자로, 이어컵 내부의 압력을 자연스럽게 밖으로 배출하도록 만든 구조입니다.
헤드폰을 제대로 착용하면 이어패드가 귀 주변에 밀착하며 내부에 압력이 생깁니다. 평판형 드라이버는 다이어프램이 크고 얇기 때문에 작은 압력에도 움직임이 영향을 받을 수 있는데요. SLAM은 이어컵의 위아래를 따라 마련한 통로로 이 압력을 조절합니다. 구조만 보면 단순한 홈처럼 보이지만 저역의 양감과 다이어프램의 움직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큽니다.
이전에 CRBN2에서 경험했듯 SLAM은 저역의 양감을 크게 늘릴 수 있고, 통로를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튜닝 포인트로도 활용됩니다. 제품마다 세부 설계는 다르겠지만 적어도 MM-520은 전작보다 저역을 넉넉하게 만들 수 있는 기반을 갖춘 셈입니다. 실제 청감에서도 이 변화는 단순한 부품 추가보다 세대교체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교체하기 쉬워진 이어패드

또 하나 눈에 띄는 변화는 이어패드의 결합 방식입니다. MM-520은 이어컵과 패드를 마그넷으로 연결해 힘을 들이지 않고 떼고 붙일 수 있습니다. 접착식이었던 MM-500은 한번 부착하면 다시 떼어 내기 번거로웠던 만큼 장기간 사용하며 소모품을 교체하기에는 이번 방식이 훨씬 편합니다.
그렇다고 마그넷 방식이 무조건 좋다고 말할 만큼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 이어컵과 패드 사이에 작은 틈이라도 생기면 그곳으로 소리가 빠져나가 튜닝이 달라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MM-520은 패드 뒤쪽을 얇은 폼으로 마감했고 그 폼 사이에 홈을 뚫어 네 모서리에 마그넷을 배치했습니다. 교체 편의성을 높이면서도 결합부의 틈을 막겠다는 의도가 분명한 설계예요.

나머지 외형과 케이블, 임피던스와 THD, 주파수 대역, 드라이버 크기 등 주요 사양은 전작과 거의 같습니다. 구성품도 하드 케이스와 소프트 파우치, 본체, 케이블, 6.3mm 어댑터로 동일하고요. 대신 SLAM이 더해지면서 무게는 MM-500의 495g에서 555g으로 60g 늘었습니다.
60g이라는 숫자보다 500g의 경계를 다시 넘어섰다는 점이 체감상 크게 다가옵니다. MM-500도 일반적인 기준에서는 가벼운 헤드폰이 아니었는데, MM-520은 분명 묵직한 편입니다. 예전 오디지의 700g급 헤드폰에 익숙하다면 견딜 만하겠지만 장시간 착용을 생각한다면 꼭 직접 무게를 확인해 보는 편이 좋겠습니다.
감도는 전작보다 2dB 높아진 102dB입니다. 내부 압력이 줄면서 다이어프램의 움직임이 원활해진 결과가 아닐까 추측할 수도 있지만, 이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 예상입니다. 분명한 것은 외형상의 변화 대부분이 SLAM을 중심으로 모이고, 그 하나가 착용과 구동, 소리까지 여러 부분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입니다.
작업용 헤드폰의 선입견을 벗어난 소리

청음은 아스텔앤컨 PD10과 크래들 조합을 소스기로 사용하고, 리프오디오 PD-05MK2 앰프에 연결해 진행했습니다. MM-500과의 비교에 앞서 MM-520만 들어 보면 기존의 ‘작업용 헤드폰’이라는 표현에서 예상하는 소리와 결이 제법 다릅니다. 일반적으로 모니터링 성향의 헤드폰은 트랜지언트가 빠르고 소리가 짧고 명확하게 맺힙니다. 리듬과 타격을 정확하게 확인하기에는 좋지만, 저역의 두께나 무게와 잔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들릴 때가 많지요. 다른 대역에서도 음선이 얇고 빠르게 사라지기 쉬우며, 라이브 녹음에서는 악기 사이의 공간이나 홀의 규모가 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MM-520에서는 이런 아쉬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SLAM의 영향이라고 결과를 원인에 끼워 맞추는 건 아닐까 싶으면서도 분명 소리에 한결 여유가 생겼습니다. 음선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어택 뒤에 적당한 살집이 붙으며 여운도 제법 길게 이어집니다. 그렇다고 풍성함만 앞세워 둔하거나 퍼지는 유형은 아닙니다.

원래 오디지가 잘하던 입체적인 표현과 분리도는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여기에 직접음 주변의 은은한 홀사운드가 자연스럽게 확산되니 실악기와 오케스트라에서도 만족도가 높았습니다. 정확하면서도 듣는 재미가 있고, 밋밋하거나 딱딱하지 않습니다. 이런 소리라면 작업용과 음감용을 굳이 나누는 의미가 있을까 싶을 정도예요.
이 장점은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LA 필하모닉의 슈만 교향곡 전집에서 잘 드러났습니다. 2018년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 실황 녹음으로, 직접음과 풍성한 홀사운드의 비율은 물론이고 무대의 전후 깊이와 높이까지 살피기 좋은 앨범입니다. 이런 녹음은 빠르고 건조한 모니터 헤드폰에서 음선이 가늘거나 좌우가 좁게 들리고, 악기 구분은 명확해도 전체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맛이 줄기 쉽습니다. 반면 MM-520은 각 악기의 질감과 위치를 또렷하게 보여 주면서도 합주가 공간을 가득 채우도록 자연스럽게 엮어 냅니다. HD800 시리즈처럼 막힘없이 좌우가 탁 트인 유형은 아니지만 충분한 면적에 전후 깊이까지 잘 표현해 스테이징은 상당히 훌륭했습니다.
살짝 웜톤으로 다듬은 토널 밸런스

음색 역시 전형적인 작업용 헤드폰과는 다릅니다. 저역은 과하지 않은 선에서 충분히 나오고 중역이나 중고역이 도드라져 들리지 않아 전체적으로 살짝 웜톤에 가깝습니다. 제가 듣기에는 1.5~2.5kHz와 4~5kHz, 6~9kHz 부근에 드문드문 딥이 느껴졌습니다.
중고역과 고역의 자극을 누른 덕분에 귀에 걸리는 부분이 적고 장시간 듣기에도 편합니다. 필요한 질감은 놓치지 않으면서 부담을 줄였다는 점은 제 취향에 잘 맞았습니다. 다만 밝고 화사한 소리나 중고역의 선명한 개방감을 우선하는 분이라면 조금 부드러운 쪽으로 치우쳤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저는 특정 대역을 강하게 강조하기보다 장르를 가리지 않는 균형을 선호합니다. 최근 음악에서는 저역을 강조한 자극적인 튜닝이 듣는 맛을 더해 주기도 하지만, 오래 두고 여러 장르를 들으려면 토널 밸런스가 안정적인 편이 유리하다고 보거든요. 그런 기준에서 MM-520은 프로 라인업이라는 이름보다 올라운더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렸습니다.
MM-500과 비교하면 달라진 방향이 보인다

MM-500과 번갈아 들으면 저역보다 먼저 4~10kHz 부근의 차이가 크게 다가옵니다. MM-500에도 딥은 있지만 MM-520보다 정도가 덜해 음악이 더 밝고 화사하며 중고역 이상의 존재감이 또렷합니다. 반대로 MM-520은 베이스가 조금 더 강조되어 두 제품의 토널 밸런스 자체가 다르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같은 슈만 교향곡을 들으면 MM-500은 제가 기억하는 작업용 사운드에 더 가깝습니다. 밝고 선명하며 음선이 또렷한 대신 두께가 가늘고 릴리즈가 짧습니다. 중고역의 개방감은 MM-500이 더 트여 있지만, 잔향이 멀리 뻗어 나가는 거리와 공연장의 천고를 포함한 실질적인 공간 규모는 MM-520이 더 크게 들렸습니다.
MM-500은 중앙에 초점이 모여 또렷하고 선명합니다. 감도가 2dB 낮아 같은 앰프에서도 볼륨을 조금 더 올려야 했지만, 볼륨만 맞춘다고 두 제품이 같은 인상으로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부각되는 음역과 에너지의 중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 귀에 적정 볼륨으로 맞추면 MM-520이 전 대역을 고르게 보여 줬고, 클래식에서는 확실히 이쪽이 더 편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렇다면 빠른 스피드가 중요한 음악에서는 어떨까요? 매니 매로퀸이 MM-500으로 작업했다고 알려진 켄드릭 라마의 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서 ‘N95’를 골랐습니다. 강하고 빠른 비트가 이어지고 후반에는 배경에 은은한 소리가 깔려 두 제품의 타격과 공간 차이를 확인하기 좋은 곡입니다.
MM-520은 무게 중심을 아래에 두고 차분하게 들려줍니다. 좌우와 전후를 다채롭게 활용하며 이번에도 무대의 입체감은 더 좋았습니다. 반면 저역 비트의 단단함과 속도는 MM-500이 분명 앞섭니다. MM-520의 타격이 ‘퍼엉’이라면 MM-500은 짧게 ‘퍽’ 하고 치고 빠지는 느낌입니다. 저역뿐 아니라 중고역에서 잘게 끊어지는 비트도 MM-500이 훨씬 민첩합니다.
빠르게 시작하고 정확히 끝나는 표현을 작업용 헤드폰의 정확성으로 본다면 이 부분은 MM-500의 우세입니다. 화사한 중고역과 빠른 음선을 유지하면서도 공간이 지나치게 답답하지 않다는 점 역시 상급 모니터 헤드폰답습니다. MM-520이 좋아졌다는 한마디로 전작의 장점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에 비해 MM-520은 어느 정도 타협을 선택했습니다. 작업용 사운드의 빠른 속도와 또렷한 음선을 조금 양보하고, 저역의 무게와 잔향, 듣기 편한 균형을 더했습니다. 음감용까지 포함한 하나의 올라운더를 찾는다면 저는 MM-520의 손을 들어주겠습니다. 다만 MM-500 특유의 민첩함과 시원한 음색이 마음에 들었던 분이라면 후속작이라는 이유만으로 바꾸기 전에 꼭 비교 청음해 보셔야 합니다.
총평

MM-520의 핵심은 결국 SLAM입니다. 늘어난 저역과 길어진 잔향에 중고역의 자극을 조금 덜어 전작보다 무게감 있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완성했습니다. MM-500을 스포츠카라고 한다면 MM-520은 편의성과 장거리 주행 능력을 더한 GT 모델에 가깝습니다. 여전히 충분히 정확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과정이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변화가 마음에 들었습니다. 작업용 헤드폰의 분석력은 유지하면서 클래식의 홀사운드와 합주의 자연스러움, 현대 음악의 저역 무게까지 함께 즐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555g의 무게는 분명한 부담이고, MM-500의 스피드와 밝은 중고역을 선호한다면 새 튜닝이 반드시 상위 호환으로 느껴지지는 않을 겁니다.
정리하면 MM-520은 프로 라인업에 컨슈머의 듣는 맛을 설득력 있게 섞은 신작입니다. 하나의 헤드폰으로 작업과 감상을 두루 해결하고 싶고, 빠른 어택만큼 자연스러운 잔향과 입체적인 무대를 중요하게 본다면 좋은 선택지가 될 듯합니다. 반대로 리듬의 맺고 끊음과 화사한 개방감을 우선한다면 MM-500도 여전히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단순히 신형과 구형이라는 딱지보다는 자신이 음악에서 확인하고 싶은 요소가 무엇인지 먼저 정한 뒤 선택하시면 차이를 훨씬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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