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리안 오디오 어레인저(Arranger)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향성
오스트리안 오디오는 이제 꽤 익숙한 브랜드가 됐습니다. AKG 출신 엔지니어들이 독립해 설립한 브랜드라는 점 때문에 등장 초기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고, 때문에 브랜드는 신생에 가깝지만 사실상 AKG의 적통이라 할 수 있으니 전통의 브랜드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 오스트리안 오디오가 최근 브랜드 구조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작년에는 DPA 마이크로폰스가 오스트리안 오디오의 지분 과반을 인수했고, 이후 오디오토닉스가 다시 DPA를 인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오스트리안 오디오 역시 오디오토닉스 산하 브랜드로 편입됐습니다. 오디오토닉스 내부를 보면 오디오 관련 브랜드 구성이 상당히 거대한 편인데요. 그 중에는 헤드파이 유저들에게 익숙한 JH 오디오 역시 이 그룹 산하에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오스트리안 오디오 입장에서는 꽤 든든한 배경이 생긴 셈이라, 앞으로의 제품 전개 역시 조금 더 기대해 볼 만해졌습니다.
어레인저는 오스트리안 오디오가 오디오토닉스에 인수되기 전에 제품 개발 및 발표가 마무리된 제품입니다. 큰 상관이 없을 것 같긴 한데, 묘하게 제품 방향성은 또 기존 제품들과 많이 달라지기도 했어요. 때문에 이후 어떤 식으로 제품이 만들어질지 상당히 궁금하네요. 우선, 어레인저를 살펴보겠습니다.
플래그십과 보급형 사이를 메우는 포지션

기존 오스트리안 오디오 헤드폰 라인업은 비교적 단순했습니다. 플래그십인 컴포저가 있었고, 보다 현실적인 가격대의 X65와 X60이 있었지요.
문제는 그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꽤 컸다는 점입니다. 컴포저는 가격이나 완성도 모두 상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제품이고, X 시리즈는 보다 모니터링 성향의 보급형 제품이인데 두 제품을 이어 줄, 중간 포지션이 비어 있었습니다. 이번 어레인저가 그 역할을 맡았고요. 상급기에는 컴포저라는 이름을 붙이더니 이번에는 편곡자, 즉 어레인저라는 이름을 붙여 놨습니다. 솔직히 이름과 제품 성격 사이의 관계를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음악가의 역할 중에서 하나 가져온 것일 수도 있겠네요.
전체적인 외형은 기존 오스트리안 오디오 제품들과 닮아 있습니다. 세로로 긴 타원형 이어컵 디자인이나 전체적인 프레임 구조 역시 익숙한 느낌이고요. 다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 이어컵 후면의 그릴부입니다. 컴포저가 내부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완전 개방형 스타일이었다면, 어레인저는 세로 스트라이프 구조물 안쪽에 다시 촘촘한 그릴이 배치된 형태입니다. 언뜻 보면 밀폐형 헤드폰처럼 보일 정도로 독특해요.
실제로 음악을 들으면서 이어컵 측면에 손을 가까이 가져가 봐도 컴포저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지는 않았습니다. 완전 개방형 특유의 극단적인 개방감보다는 조금 더 절제된 구조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디자인이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과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느낌이 있고, 만약 이 디자인 그대로 밀폐형으로 나왔어도 패션 아이템처럼 활용하기 괜찮았을 것 같아요. 디자인뿐 아니라 힌지를 포함한 주요 부품 대부분이 금속 재질이고, 접이식 구조라 내구성은 물론이고 실내용 헤드폰임에도 보관이나 휴대성이 꽤 뛰어난 편입니다.

이어패드 교체가 가능한 헤드폰은 흔하지만, 헤드밴드 쿠션까지 유저가 직접 교체 가능하도록 만든 경우는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안 오디오는 이 부분을 상당히 신경 쓴 느낌이에요. 장기 사용을 고려한 설계처럼 보였습니다. 착용감 역시 꽤 좋았습니다. 이어패드와 헤드밴드 모두 스웨이드 계열 재질인데 가죽과 패브릭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하는 것 같은 착용감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리뷰 준비하면서 5~6시간 정도 계속 착용하고 있었는데, 무게도 320g 수준이라 부담스럽지 않았고요. 다만 소재 자체가 고급스러운 편이라 나중에 소모품 교체 비용이 어느 정도일지는 조금 궁금해지긴 하네요.
완전히 컨슈머 지향으로 바뀐 사운드

어레인저를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놀랐던 건 기존 오스트리안 오디오 제품들과의 차이였습니다. 이전의 X65는 상당히 모니터링 지향적인 성향이 강했고, 컴포저는 디테일과 음감 성향을 모두 잡은 웰메이드 헤드폰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레인저는 방향성이 꽤 다릅니다. 정말 전형적인 컨슈머 오디오 스타일에 가까워요.
전체적으로 살짝 웜톤 성향이고, 부드럽고 듣기 좋은 방향으로 소리를 다듬어 놓은 느낌입니다. 공간 표현도 꽤 괜찮은 편인데, 좌우로 극단적으로 넓게 펼쳐지는 타입이라기보다는 입체적인 공간 형성 쪽에 더 강점이 있습니다. 특히 저역 표현이 꽤 인상적이었어요. 양감 자체도 제법 있는 편인데 단순히 두껍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니라 타격감과 울림의 밸런스를 상당히 잘 잡았습니다. 너무 딱딱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퍼지지도 않는 절묘한 질감이에요. 오스트리안 오디오 헤드폰 중에서는 가장 저역 지향적인 모델처럼 느껴지면서도 이 저역이 참 잘 다듬어져 있습니다. 튜닝 노하우야 이미 오랜 기간 쌓아 온 만큼 어떤 성향으로 만들어도 기본 이상은 합니다.
어레인저는 단순히 저역 양감만 많은 헤드폰은 아닙니다. 이 저역과 입체적인 공간 표현이 결합되면서 울림이나 앰비언스 표현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중앙의 기음은 안정적으로 중심을 잡아 주고, 잔향과 공간 울림은 부드럽게 퍼져 나가는 느낌이에요. 반면 중역 이상의 존재감은 조금 취향을 탈 수 있습니다. 제가 듣기엔 1kHz 부근과 2~4kHz 대역이 살짝 눌려 있는 듯한 인상이 있고, 치찰음 역시 꽤 억제된 편입니다그래서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고 볼륨을 조금 높여도 부담감이 적어요.

대신 컴포저처럼 선명한 음선이나 반짝이는 중고역 표현을 기대한다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디테일이나 생생함보다는 분위기와 스케일 표현에 조금 더 집중한 타입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 헤드폰은 장르 궁합이 꽤 명확한 편이었습니다. 강한 비트 중심의 EDM이나 힙합보다는, 공간 울림과 잔향이 중요한 음악에서 훨씬 매력이 살아나요. 클래식이나 라이브 앨범, 부드러운 R&B 계열과 상당히 잘 어울렸습니다.
개인적으론 특히 홀사운드가 살아 있는 실악기 녹음에서 인상이 좋았습니다. 테스트하면서 가장 재미있게 들었던 앨범은 개리스 던킨의 신보
다음으로 앰비언스, 이 홀사운드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앨범을 하나 골랐습니다. 생상스 교향곡 3번, '오르간'입니다. 마지막 4악장의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파이프 오르간의 웅장함, 그리고 진행될수록 점진적으로 쌓아 올려지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상당히 인상적인 곡입니다. 일단 어레인저는 파이프 오르간이 공간 전체를 채우는 느낌을 제법 잘 소화해 냅니다. 다만 다이나믹스가 뚜렷하게 강조되기 보다는 조금은 완만한, 얌전하고 부드러운 표현으로 터질 때 확 터져 주는 쾌감은 조금 덜한 편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편안하게 감상하기에 좋은, 그래고 오래 듣기에 무리가 없는 유형의 헤드폰입니다.
총평
오스트리안 오디오의 신제품 어레인저는 기존 라인업과는 성향 차이가 꽤 큰 헤드폰이었습니다. 컴포저처럼 선명함과 디테일을 중심으로 접근하는 타입이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울림과 웜톤 밸런스를 통해 음악을 편안하게 즐기도록 만드는 성향에 가깝습니다. 특히 오래 들어도 피곤하지 않은 사운드, 그리고 홀사운드와 잔향 표현을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꽤 만족도가 높을 것 같아요.
반대로 기존 오스트리안 오디오 제품의 모니터링 성향이나 선명한 음선을 기대하고 접근한다면 처음에는 조금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같은 브랜드지만 방향성이 상당히 다르거든요. 그래서 오스트리안 오디오에 익숙한 유저 분들도 가능하다면 꼭 직접 청음해 보고 결정하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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