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의 '클래스 A'라는 이름표 - 마케팅 표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
FiiO의 'CLASS A' 헤드폰 앰프가 출력과 임피던스에 따라 클래스 AB로 전환되는 점을 둘러싼 논란을 살펴봅니다. 제품 성능과 별개로 이름과 광고 문구가 소비자 신뢰에 미치는 영향을 짚습니다.

이쿠스틱스와 다르코 오디오에서 연달아 읽어 볼 만한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FiiO가 내놓은 데스크톱 헤드폰 앰프 '클래스 A'를 둘러싼 논란을 다룬 내용인데요. 제목부터 심상치 않습니다. "FiiO의 클래스 A 앰프는 항상 클래스 A로 동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제품 자체는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379.99달러, 풀 디스크리트 밸런스드 설계에 채널당 최대 4W 출력, 아날로그 톤 컨트롤까지. 하이엔드 비엔나 2026에서는 순수 클래스 A 설계, 채널당 1,000mW로 소개됐고 캔잼 런던에서도 따뜻하고 달콤하다는 호평을 받았던 제품입니다. 저라도 관심을 가졌을 겁니다.
제품명과 실제 클래스 A 동작 구간
문제는 헤드파이에서 시작됐습니다. 한 사용자가 클래스 A 동작의 계산 근거를 묻자 FiiO 측이 답하는 과정에서 실제 동작이 드러난 건데요. FiiO가 밝힌 순수 클래스 A 동작 구간은 16Ω에서 약 140mW까지, 32Ω에서는 500mW 이상까지, 60Ω 이상에서만 전 구간 클래스 A 유지입니다. 이 한계를 넘으면 자동으로 클래스 AB로 전환되고, 사용자가 모드를 고정할 방법도 없습니다.
숫자로 따져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공식 최대 출력은 32Ω 기준 4,000mW인데, 그중 클래스 A로 공급되는 것은 고작 8분의 1 수준입니다. 다르코의 글처럼 낮은 출력에서 클래스 A로 동작하는 '구간'이 존재하는 앰프는 그 구간이 아무리 넓어도 정의상 클래스 AB 앰프로 봐는 것이 맞습니다. 클래스 A 구간을 넓게 확보한 하이 바이어스 설계와 순수 클래스 A 설계는 엄연히 다른 이야기니까요.

FiiO의 해명과 다른 사례
이에 대한 FiiO의 해명도 있었습니다. 창업자 제임스 청이 헤드파이에 직접 글을 올렸는데 전 임피던스에서 클래스 A를 유지하는 버전도 개발했지만 그 경우 출력이 32Ω에서 약 1W로 제한되고 출력 임피던스도 높아져서 최대 출력을 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추가된 출력은 "공짜로 얹어 준 것"이라는 표현까지 썼고요. 부인하지 않은 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공짜로 얹어 준 것치곤 너무 스펙에 최대 출력을 강조하지 않았나요?
커뮤니티와 미디어의 반응은 대체로 비판적입니다. 다르코 오디오는 "있는 그대로 말하라"는 취지로, 제품명을 클래스 A라고 지었으면 스펙 시트에 '16Ω 0.14W, 32Ω 0.5W까지 클래스 A, 그 이상은 클래스 AB'라고 명기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그러면서 모파이 사태를 끌어옵니다. 이전에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만 모파이에서 리마스터한 LP와 관련한 사건입니다. 결과물은 좋았지만 LP 제작 과정에 디지털 공정이 있었다는 사실을 회사가 아니라 피닉스의 레코드 가게 주인에게서 듣게 되면서 신뢰의 타격이 훨씬 커졌다는 이야기죠. 반면 중국의 Aune는 자사 N7 앰프가 해외 리뷰 채널의 벤치 테스트에서 소비전력 측정으로 하이 바이어스 클래스 AB임이 확인되자, "순수 클래스 A라고만 표기한 것은 부정확했다"고 공식 사과하고 표기를 정정하겠다고 밝힌 사례가 있습니다.
여기서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이 기계가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진다거나, 소리가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헤드폰, 대부분의 청취 볼륨에서는 클래스 A 구간 안에서 동작하고, 캔잼에서 받은 호평이 거짓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잘 만든 클래스 AB 앰프는 얼마든지 좋은 소리를 냅니다. 이 논란은 처음부터 소리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소리보다 신뢰의 문제
신뢰의 문제입니다. 이 기기의 동작만 놓고 보면, 다른 회사들이 클래스 AB라고 부르는 앰프들의 범주에 들어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렇다면 제품 이름에 클래스 A를 박아 넣고 '순수 클래스 A'로 홍보한 행위는 기만에 가깝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스펙의 일부를 말하지 않는 것과, 사실과 다른 이름을 붙이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케팅에는 어느 정도 과장이 용인되는 세계가 있습니다. '따뜻한 소리', '아날로그적인 질감' 같은 표현의 이야기라면 저도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동작 방식 같은 검증 가능한 사실, 그것도 제품명이 된 사실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마케팅 표현은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요. 적어도 사실의 영역만큼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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