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연한 듯, 당연하지 않은 오디오파일을 위한 조언들(3)
HEADPHONESTY에서 언급한 오디오파일이 조심해야 하는 열 가지 조언들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감기에 호되게 걸려 일주일을 침대에 누워만 지냈습니다. 푹 쉰 덕분에 피부는 조금 좋아진 것도 같습니다. 이번 감기 많이 독하네요. 건강 조심하십시오! 시간이 지나 흐름이 끊기긴 했으나 시작한 것은 마무리를 해야지요. 헤드포니스티에서 던진 오디오파일들을 위한 잘못된 조언들, 그 마지막 참견을 시작합니다.
7. 믿을 만한 브랜드만 사라.

하이파이 오디오도 '헤리티지'를 중요시 여기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적어도 과거에는 브랜드가 걸어 온 길을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오디오는 기술과 예술의 합으로 완성됩니다. 그 중에서 예술, 소리를 조율하는 일은 단기간 내에 완성도를 끌어 올릴 만한 게 아니라는 것이 오랜 하이파이 유저들이 가지는 신념입니다. 그 동안은 신생 브랜드가 하이파이에 섣부르게 발을 들이기 어려운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이러한 전제가 흔들립니다. 첫 째, 압도적인 물량 공세 앞에서는 차분하게 노하우를 쌓아 온 장인들도 자리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보통 10년에 걸쳐 발전시켜야 할 일은 열 배에 가까운 물량으로, 자본으로 들이밀다 보니 그 성장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자본의 차이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혹은 역전 후 점점 벌어지는 기술력의 차이도 무시하지 못하지요. 이리저리 끊임 없이 개발하고 개발에 그치지 않고 상용화하고, 쉼 없이 개선하면서 이제는 기존 하이파이 자리를 차이파이가 대체하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래 하이파이라 불리던 브랜드 중 살아남은 브랜드들은 '초하이파이'를 지향하는 추세입니다.
두 번째, 브랜드명이 같다고 해서 예전 그 브랜드가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몇 년 사이 메이저라 불렸던 하이파이 브랜드들의 주인이 수 차례씩 바뀌었습니다. 한 해에도 몇 번이나 관련 기사를 접하게 돼죠. 브랜드의 주체가 바뀌고 기조가 바뀌는 가운데 그 브랜드는 과연 이전과 같은 브랜드일까요? 몇몇 브랜드의 경우 이미 유저들 사이에서도 과거의 그 브랜드가 아니라는 인상이 박힌 경우도 왕왕 보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제품을 고를 때 유명 브랜드를 먼저 찾게 되는 이유는 환금성 때문일 겁니다. 오디오라는 취미는 끝이 없다고 하죠. 당장 종결이라 생각해도 며칠 뒤 혹은 몇 년 뒤에는 다시 새로운 기기에 대한 열망이 끌어오릅니다. 그때 기기의 중고가를 제대로 받기 위해서는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높은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품을 고를 때 추후 처분까지 염두에 두고 선택을 하는 것이 참 안타까우면서도 또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헤드포니스티에서는 브랜드가 아니라 특정 제품을 보고 판단하라고 합니다. 저는 조금 욕심을 내 보면 한번쯤은 브랜드를 떼고 제품만 보고 선택하는 과감함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몇 년 후 제품을 처분해야 할 때가 되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할 겁니다. 하지만 판매 이전까지, 실제 사용 기간 동안은 아마 훨씬 더 만족하면서 오디오 생활을 즐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저기 방문하면서 최대한 다양한 제품을 선입견 없이 들어 보고, 내 것을 선택할 때에는 신중하게, 하지만 과감하게 고르는 것이 좋겠습니다.
8. 사진을 통해 스피커 배치에 대해 정확히 조언할 수 있다.

오디오는 파장의 합이기 때문에 거리 측정을 통해 어느 정도 최적화된 위치를 찾는 것이 가능합니다. 공간의 수치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최적의 위치를 계산해 주는 웹페이지도 쉽제 찾을 수 있지요. 문제는 각각의 거리를 제외한 나머지 변수들을 일일이 맞춰서 적용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학문에서 어떤 실험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변인 통제라고 합니다. 살펴보려는 어느 한 요소를 제한 나머지 것들을 최대한 완벽하게 통제해야만 올바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데, 이 오디오라는 것은 통제가 어려운 변인들이 너무나 많아서 문제입니다. 헤드포니스티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벽의 재질, 공간의 울림 정도가 다 다릅니다. 여기에 국내처럼 아파트가 주가 되는 환경이라면 적정 볼륨값도 다르게 특정해야 할 겁니다. 게다가 청자마다 원하는 소리의 특성 또한 다릅니다. 세상에 수많은 오디오 제품들이 있는 것만큼, 유저들의 취향 역시 제각각입니다.
남의 오디오를 판단하고 조언하는 건 그래서 조심해야 합니다. 주인의 취향이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든 듣는 방식의 차이 때문이든 오랜 시간에 걸쳐 신경 써서 만든 결과를 섣부르게 평가하는 것은 예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적절한 조언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누군가는 이쪽의 단점을 저쪽을 통해 상쇄하는 식으로 만들어 놨을 수도 있는데, 이를 모르고 하나만을 지적하는 건 전체를 해치는 조언일 수 있습니다. 비단 스피커 배치뿐 아니라 무엇이 되었든 겉만 보고 깊숙하게 충고, 조언하는 일은 되도록 줄이는 게 좋겠습니다. 물론 주인장이 원한다면 주인장과 함께 오랜 시간을 들여서 차분하게 세팅을 매만지는 것은 오디오쟁이 입장에서 환영입니다.
9. 아티스트의 의도에 맞게 들어야 한다.

예술에서 해묵은 논쟁거리 중 하나가 작품의 해석 관점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작가의 해당 작품을 통해 의도하려는 것을 중요시할 것인가 혹은 작가의 손을 떠난 그 시점부터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넘길 것인가에 대한 관점 차이인데, 이걸 오디오 분야로 그대로 가지고 오면 위와 같은 조언이 되겠습니다.
아티스트의 의도란 곧 앨범 작업 과정에서 활용된 시스템의 소리와 유사한 사운드를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프로 오디오 대 하이파이 오디오라는 거대한 두 축의 대결인 셈입니다. 여러 하이파이 청음실 및 스튜디오들을 방문해서 청음해 봤지만 확실히 양쪽 분야가 추구하는 소리가 다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프로 쪽에 익숙한 사람과 하이파이에 익숙한 사람이 지향하는 소리의 방향 차이도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다만 하이파이라 하더라도 청음실마다, 시스템마다 소리가 천차만별이듯이 스튜디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의 스튜디오 내에서도 룸마다 구체적인 사운드 성향 자체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 정도 되면 오디오에서의 원음이라는 개념 자체가 별 의미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작가는, 즉 아티스트 및 아티스트의 의도를 반영한 앨범 제작자는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밀키트를 제공하는 정도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나머지 실제 요리는 키트를 들고 요리를 해야 하는 우리의 몫이고요.
저는 매운 맛을 많이 좋아하는 편입니다. 준비된 밀키트가 조금 덜 매콤하다면 요리 도중에 청양 고추를 좀 더 썰어 넣어서 조리를 합니다. 그게 제 입맛에 더 잘 맞습니다. 다른 이가 아닌 제가 먹을 음식인데 제 입맛에 맞게 조리하는 게 정답이겠죠. 다만 저는 제가 다른 사람보다 맵게 먹는 걸 즐긴다는 사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이에게 음식을 권할 때에는 제 입맛을 감안해서, 적당히 조절해서 음식을 설명합니다.
온전한 개인적인 음악 감상의 입장이라면 저는 작가의 의도보다는 관객의 해석에 더 무게를 두는 쪽입니다. 오디오, 좋은 소리라는 건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너무 밸런스적인 소리, 소위 레퍼런스라 할 만한 소리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남들에게 소리를 소개하는 입장은 또 다릅니다. 음식이 짠지 싱거운지 적절하게 평가하려면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간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리뷰어 입장에서는 기준이 되는 소리를 잡아 두는 것이 중요하고요.
따라서, 취향이 더 중요하되 기준을 잡을 필요는 있다고 정리합시다. 여기서의 기준이 '아티스트의 의도'와 어느 정도 결이 닿아 있다고 봐야겠습니다.
10.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다.

마침 이와 관련하여 얼마 전 SNS에서 현업 엔지니어 분이 쓴 짧은 글을 봤습니다. 실험 결과 오디오에서 외적인 것이 소리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었어요. 이와 관련하여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하고, 헤드포니스티를 비롯한 수많은 실용 기반 오디오 유저들이 소리만을 놓고 평가하면 값비싼 오디오가 사치라는 주장을 하는 근거가 되기도 합니다.
재밌는 것은 '디자인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잘못된 조언이라고 언급하는 것이 헤드포니스티라는 것입니다. 누구보다 소위 실용파에 가까운 웹진에서 또 외적인 면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사실 세부 내용을 보면 실생활에 오디오가 잘 녹아들어야만 듣는 시간 자체가 늘어난다는, 디자인에 대한 소극적인 인정 정도입니다만.
저는 이것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러 실험 결과를 보듯이 사람들은 소리를 판단할 때 단순히 소리만 두고 판단하지는 않습니다. 뇌의 속임이 되었든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보기 좋고 본인이 (소리 외적으로도) 만족할 만한 여지가 높은 오디오 시스템 쪽에 더 편을 들어 줍니다. 이 결과 자체가 더 중요한 것 아닐까요? 우리가 소리를 들을 때 매번 블라인드 테스트를, 눈을 감고 음악만 들을 건 아니니까요.
만족이 청각만으로 충족되는 것이 아니라면 구태여 그렇기 때문에 다른 것을 배제하고 청각에만 집중하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이를 감안해서 종합적인 만족도를 끌어 올릴 수 있는 제품을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을 지출하는 것은 개인적인 가치 판단의 결과겠지요.
이를 인정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싸울 일이 줄어듭니다. 만족의 다름을 인정하면 LP의 물성부터 케이블 매칭, 전원단 관리까지, 굳이 수치를 들면서 서로 싸우고 비아냥대지 않더라도 각자가 추구하는 길이 다르구나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될 듯해요. 애초에 이번 시리즈의 열 가지 잘못된 조언들 중 많은 것들이 '다름을 인정하라'는 전제만 존중한다면 해결될 것들입니다.
구태여 한 항목씩 짚어 가면서 글을 쓰다 보니 쓸데 없이 너무나 길어졌습니다만, 쓰다 보니 정작 하고 싶은 말은 10번에서 다 나온 것 같습니다. 세상에 백 프로 맞는 게 몇이나 있겠어요. 상황에 따라 다르고, 또 어제 맞았던 게 내일은 틀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둥글게 둥글게, 여유를 가지고 즐기면 누구에게나 행복한 오디오 생활이 되겠다 싶은.. 어제까지 많이 아프다가 나아서 세상이 즐거워 보이는 사람의 잡설은 이렇게 정리하고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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