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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피제이터의 새로운 플래그십 DAC, 아프로디테 DAC를 듣고 왔습니다.

GLV에서 램피제이터 아프로디테 DAC의 진공관 10개와 네 가지 모듈레이터 모드를 살펴봤습니다. 진공관 교체와 USB·HDMI 입력에 따른 청감 차이를 기록합니다.

램피제이터의 새로운 플래그십 DAC, 아프로디테 DAC를 듣고 왔습니다.

삼전동에 위치한 GLV에서 램피제이터의 새로운 DAC, 아프로디테 DAC를 듣고 왔습니다. 진공관을 사용하는 DAC의 선두 주자답게 이번에도 마치 앰프가 연상되는, 무려 10개나 되는 진공관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띕니다. 기존의 호라이존이나 퍼시픽도 그랬지만 무게 또한 50kg 가까이 나가는 데다가 한결 커친 덩치 때문에 이제는 정말로 생김새만으로는 DAC라고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덩치는 커졌지만 기존 제품들보다 기능적으로는 오히려 더 단순해졌습니다. 이번에는 프리단까지 아예 제거해 버렸더군요. 말 그대로 순수 DAC입니다. 과연 램피제이터에서 볼륨단을 제거하면서까지 얻으려 했던 온전한 DAC의 성능이 무엇인지, 또 이로 인해 실제로 이전 제품들 대비 어느 정도나 성능이 올라갔을지가 궁금했습니다. 마침 또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 GLV에 방문해서 들었던 제품이 MSB의 신형 플래그십 센티넬이었기에 일정 수준 이상의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박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습니다.

램피제이터 아프로디테 DAC 상단의 진공관 열 개

진공관 10개와 능동 부하 회로

아프로디테는 총 10개의 진공관을 사용했습니다. 다시 봐도 무슨 DAC에 이 정도씩이나 진공관 물량을 투입하나 싶은 정도인데요. 개인적으로 진공관 자체에도, 그리고 또 진공관 설계에도 관심이 있어서 하나씩 좀 찾아 봤습니다. 앞에서부터 정류관 2개, 그리고 그 뒤에 실제 신호 증폭을 담당하는 4개의 진공관에 또 각각의 증폭관과 연결된 능동 부하 4개입니다. 정류관을 제외한 8개의 진공관에는 모두 KT88이 기본적으로 꽂혀 있는데, 증폭관에는 KR 오디오의 KT88이, 능동 부하에는 푸스반느의 AKT88이 기본관으로 사용됐습니다.

디지털 인풋을 통해 아프로디테에 신호가 들어오면 먼저 내부의 디지털 엔진을 거쳐 L+, L-, R+, R- 네 개의 아날로그 신호를 생성합니다. 사진에서 중앙의 진공관 각각에 해당 표기가 되어 있는 게 보이는데, 이게 처음으로 아날로그 신호가 거치게 되는 증폭관입니다. 참고로 사진은 기본관인 KT88 대신 EL34로 롤링한 상태입니다.

손에 든 대형 진공관 한 개

바닥에 놓인 진공관의 라벨과 핀

보통은 증폭관에 단순히 저항을 거는 수동 부하를 주로 사용하는데, 아프로디데는 또다른 진공관을 사용하는 능동 부하 방식을 사용합니다. 능동 부하를 사용하면 설계는 상대적으로 많이 복잡해지지만 증폭률도 더 키울 수 있고, 잘만 설계하면 보다 선형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아프로디테의 경우 신호의 큰 증폭이 별 의미가 없는 DAC이기 때문에 높은 출력을 얻는 것이 목적은 아닐 테고, 이보다는 낮은 왜곡에 초점을 맞춰서 설계한 것 같습니다. 이 능동 부하 역할을 하는 것이 맨 뒤의 AKT88 4개입니다.

진공관을 바꿔 들어 본 차이

청음 당시에는 이런 정보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이리저리 진공관들을 바꿔 끼워 봤는데 KT88, AKT88, EL34를 어느 열에 끼우든 모두 사용이 가능하지만 소리를 따졌을 때 이 능동 부하 자리에는 AKT88이 고정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었습니다. 증폭관이야 KT88과 EL34가 각자의 특성을 뽐내며 경쟁할 만하지만 이 능동 부하는 일단 오늘의 세팅 안에서 램피제이터가 정해 준 담당자인 AKT88을 그대로 사용했을 때가 최선이었습니다.

그래도 못 쓰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실제로 청음회 때 능동 부하 자리에 EL34를 꽂아서 들어 보기도 했으니 그 결과만 간략히 기록으로 남기자면, AKT88을 꽂은 것과 비교했을 때 음에 실리는 힘이 많이 빠집니다. 청음 당시에는 가장 뒷단이 증폭단인 줄 알고 EL34가 AKT88 대비 화사하고 예쁜 소리지만 확실히 저역의 에너지나 밀도, 무게감에 있어서는 KT88 계열이 장점이 있구나 싶었습니다. 신호 처리 방식을 잘못 이해하고 있었음에도 결과는 어떻게 비슷한 방향으로 간, 뒷걸음질 치다가 쥐 잡은 격이랄까요.

AKT88과 EL34는 당연한 소리지만 내부 저항이라든지 전류/전압 특성 등이 많이 다릅니다. 따라서 둘을 같은 능동 부하 자리에 넣더라도 증폭관 입장에서는 부하 조건이 달라질 테고요. 그리고 아프로디테 DAC에서 그 자리에는 EL34보다는 AKT88이 더 잘 어울리나 봅니다. 오늘 또 한 가지 배운 점은 증폭관이 아니라 능동 부하관을 교체하는 것으로도 소리가 극적으로 바뀐다는 점입니다. 사실 소리 변화의 측면에서 보자면 증폭관을 바꾸든 능동 부하관을 바꾸든 둘 다 변화의 폭이 굉장히 컸습니다. 따라서 아프로디테 유저 입장에서는 진공관 롤링을 통한 소리 만들기에도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그리고 금전)이 필요해 보입니다.

진공관이 꽂힌 아프로디테 DAC의 측면

모듈레이터 네 가지 모드

문제, 혹은 재밌는 점은 아프로디테 DAC의 소리를 만질 수 있는 부분은 진공관뿐만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아프로디테 DAC에는 총 4개의 모듈레이터와 총 6개의 디지털 필터의 설정이 가능합니다. 조합으로 따지면 이것만 24가지 조합이 나옵니다. 여기에 페이즈 또한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베스킨라빈스도 31가지인데, 이 녀석은 48가지입니다.

여기서 재밌는 것은 모듈레이터였습니다. 제가 듣기에 청감상 큰 소리 차이를 만들어 내는 요소가 바로 이것이었고요. 램피제이터에서는 애초에 디지털 엔진에 대해서도 함구하고 있고, 여기에 포함되는 각각의 모듈레이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 또한 당연히 없습니다. 단지 '정답은 없으니 유저가 귀로 듣고 좋은 것을 찾아라'예요. 때문에 지금부터는 순전히 제 추측으로 풀어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델타 시그마 DAC에서 모듈레이터의 주요 기능은 노이즈 셰이핑이라고 합니다. 신호를 고속으로 처리할 때 발생하는 양자화 노이즈가 청각에 영향을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저 높은 주파수 쪽으로 밀어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로디테 DAC는 구체적인 방법은 모르지만 이 노이즈 셰이핑의 방식에 네 가지 선택지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이 네 가지 모드가 1번에서 4번으로 갈수록 보다 디지털스러운 소리로 변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청자에 따라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것도 이번 청음회의 재미 중 하나였습니다. 제 경우에는 1번으로 맞췄을 때 가장 무대의 천고가 높게 표현됐고, 음상이 적당히 부풀었으며 덕분에 조금 더 아날로그스러운 부드러움이 묻어 나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반대로 4번에서는 높이가 다소 납작해지는 대신 무대의 좌우 폭이 가장 커졌고, 소리는 보다 타이트해져서 상대적으로 소위 디지털스러운 소리로 들렸고요. 청음 시간 대부분을 1번 혹은 4번 으로 들었지만 의외로 가장 균형 있는 것은 2번이었습니다. 좌우가 너무 좁지도, 천고가 너무 낮지도 않으면서 적당한 여유와 빠르기가 섞인 절충안이었어요.

청음실 중앙에 설치된 DAC와 오디오 기기

입력 방식과 최종 세팅

USB로 연결했을 때와 HDMI로 연결했을 때에도 또 소리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USB가 상대적으로 음상을 타이트하게 딱 잡아서 표현한다면 HDMI는 보다 풍성하고 무게감을 실어서 들려 줬습니다. 때문에 각각의 연결 방식에 따라 어울리는 모드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데, 가령 USB에서는 타이트한 음상에 약간의 여유로움을 더하는 1번 쪽이, HDMI에는 살짝 과하게 풀어지는 듯한 음선을 깔끔하게 잡아 줄 수 있는 4번 쪽이 더 어울렸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모듈레이터를 4번으로 맞추면 음상이 마치 쟁반처럼 납작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대체로 1번이 더 취향에 맞았습니다.

각종 케이블, 진공관 배치, 아프로디테 DAC의 각 모드 등을 조합한 제가 꼽은 오늘의 세팅은 증폭관에 KT88 대신 EL34를 사용하고, 케이블은 HDMI(오디오퀘스트 드래곤)에 모드는 모듈레이터 1번(혹은 2번)을 사용하는 조합입니다. EL34는 KT88 대신 화사한 중고역과 확산감으로 보다 소리를 라이브하게, 다채롭게 들려 줬습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KT88 대비 저역의 무게감이 조금 부족하게 들렸는데, 이를 보완해 준 것이 오디오퀘스트 드래곤입니다. 여기에 EL34로 공간을 열어 놨으니 모듈레이터를 1번으로 맞췄을 때에도 좌우 공간까지 충분히 벌려져서 표현됐습니다. 이렇게 들으니 이전 램피제이터에서 아쉬웠던 점은 모두 사라지면서 장점은 보다 살아난, 정말 인상적인 소리가 나오더군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소리를 만지다가 어느덧 밤이 되어 청음회를 마쳤습니다만, 아마 다른 분들도 시간적인 여유만 있었다면 계속해서 뭔가 더 만들어 나가고 싶으셨을 듯합니다. 그만큼 만들어 나가는 재미, 듣는 재미가 있던 자리였고, 제품이었습니다. 다음에는 비슷한 가격대인 MSB 캐스케이드와 맞비교를 하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해요. 사실 이전까지는 저는 램피제이터보다는 그래도 MSB 쪽이었는데 이번 아프로디테는 그렇게 쉽게 어느 한쪽을 고를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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