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팁은 소리를 얼마나 바꿀까, 엘로이트 벨벳 3종 비교
엘로이트 벨벳 이어팁의 기본·와이드보어·내로우보어를 비교했습니다. 착용감과 크기, PD10·클라루스 매칭에서 달라진 음색과 공간 표현을 살펴봅니다.

오늘은 이어팁 이야기입니다. 헤드파이 유저들이 이어폰만큼 신경을 쓰기도 하고 반대로 번들팁 하나로 끝까지 듣기도 하는 재미있는 액세서리예요. 예전에는 이어폰을 사면 당연히 따라오는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별도로 구입하는 팁이라면 컴플라이 폼팁이 먼저 떠오르던 시절도 있었고요.
다만 폼팁은 귀 모양에 맞춰 눌러 쓰는 만큼 차음성과 밀착감이 좋지만 매번 손으로 만져야 하고, 세척을 하더라도 실리콘팁보다 빨리 닳는 게 단점입니다. 자연스럽게 소모품처럼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했지만 당시의 실리콘팁은 종류도 많지 않았고 소리 면에서도 그저 번들팁이라는 인상이 강해서 폼팁이 더 인기였던 듯합니다.
이후 실리콘의 두께와 형태, 표면 처리와 소재가 발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스핀핏처럼 널리 알려진 서드파티 제품이 등장했고 요즘에는 워낙 종류가 다양해져서 실리콘팁 안에서도 착용감과 음색을 취향대로 고를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는 이어폰의 완성도를 온전히 끌어내려면 자신에게 맞는 이어팁을 찾는 과정을 빼놓기 어려울 정도예요.
이어팁을 고르는 첫 번째 기준
저는 이어팁을 고를 때 무엇보다 착용감을 먼저 봅니다. 크기도 중요하지만 총알처럼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지, 혹은 달항아리처럼 가운데가 가장 넓은지에 따라 귀 안에서 고정되는 위치가 달라집니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오래 착용하기 어렵다면 손이 가지 않잖아요. 예쁜 옷도 내 몸에 맞지 않으면 입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표면의 질감도 중요한데요. 귀에 착 달라붙는 젤 타입은 고정력과 차음성에 유리하지만 이압이 높고 끈적이는 느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매트하고 부드러운 팁은 넣고 빼기 편하며 귀에 가해지는 부담도 적지요. 저는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사이즈는 평소 사용하는 사이즈가 있으실 테니 상대적으로 고르기는 쉽습니다만 이것도 이어폰의 노즐 길이에 따라 조절할 필요가 있습니다. 노즐이 길면 이어폰이 깊게 들어가므로 평소 크기나 한 단계 작은 팁이 맞을 수 있고, 노즐이 짧다면 더 바깥쪽의 넓은 이도에 고정되기 때문에 한 사이즈 큰 팁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같은 귀에 M과 L이 모두 맞더라도 고정 위치가 달라져 소리까지 바뀔 수 있고요.
여기까지 맞는 팁을 찾았다면 그다음부터 이어팁은 사운드 튜닝 도구가 됩니다. 자동차에서 타이어 하나가 접지감과 승차감을 바꾸듯 이어팁도 보어의 폭과 길이, 소재에 따라 이어폰의 무대와 에너지 배분을 바꿉니다.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효율적인 튜닝재인 셈입니다.
디비누스에서 엘로이트로

엘로이트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디비누스를 떠올리면 됩니다. 기존 디비누스가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이름을 엘로이트로 바꿨습니다. 이번에 비교한 제품 중 기존 벨벳과 벨벳 와이드보어 패키지에는 아직 디비누스가 적혀 있고, 새로 나온 내로우보어에는 엘로이트가 표기돼 있습니다. 이후 기존 제품도 순차적으로 새 브랜드명으로 바뀔 듯하고요. 제품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판매 구성은 한 쌍, 같은 크기 세 쌍, 그리고 다섯 가지 사이즈를 한 쌍씩 담은 풀패키지로 나뉩니다. 평소 사용하는 크기를 정확히 안다면 단일 사이즈 구성이 경제적이지만 반대로 처음 벨벳팁을 구입한다면 풀패키지로 자신의 크기를 찾은 뒤 다음부터 해당 사이즈만 구입하는 방법도 권할 만합니다.
세 가지 제품은 기본 벨벳, 벨벳 와이드보어, 벨벳 내로우보어입니다. 가장 먼저 나온 벨벳은 여러 이어폰의 번들팁으로도 사용돼 익숙한 분이 많을 겁니다. 이후 소리가 빠져나오는 끝부분을 넓힌 와이드보어가 등장했고, 최근 반대로 끝을 좁힌 내로우보어가 더해지면서 라인업이 완성됐습니다.
소재와 표면 질감은 세 제품이 같습니다. 이름처럼 매트하고 부드러우며 손가락으로 문질렀을 때 걸리거나 끈적이는 느낌 없이 스윽 미끄러집니다. 눈으로는 매끈해 보이지만 표면에 엠보싱 처리를 했다고 하는데 착용 후 물티슈나 알코올 스왑으로 닦기도 편하고, 개인적으로는 바로크 팁과 함께 자주 손이 가는 이유도 이 편안한 질감에 있습니다.
보어의 폭과 길이가 만드는 차이

셋은 입구뿐 아니라 높이와 노즐 고정부도 조금씩 다릅니다. 같은 사이즈를 나란히 놓으면 기본 벨벳이 와이드보어와 내로우보어보다 약 1~1.5mm 높습니다. 때문에 이어폰을 장착했을 때 소리가 지나오는 도관도 그만큼 길어집니다. 뒤집어서 보면 기본 벨벳의 고정부 직경이 약 0.5mm 좁습니다. 제조사 기준 기본 벨벳은 직경 3~5mm 노즐, 나머지 두 제품은 4~6mm 노즐에 맞는다고 합니다. 일반적인 이어폰에서는 셋 모두 큰 문제가 없겠지만 끝부분이 유난히 굵은 노즐이라면 기본 벨벳을 끼울 때 힘이 들 수 있을 테고요.
다만 기본 벨벳도 고정부를 지나면 내부 직경이 넓어지므로 장착 후 이어폰 노즐과 만나는 구간의 크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소리 차이를 만드는 핵심은 이어폰 노즐 끝부터 귀에 전달되기 직전까지 이어지는 도관의 길이와 모양입니다. 클라루스에 장착하면 와이드보어와 내로우보어는 비교적 부드럽게 들어가고 기본 벨벳은 입구가 좁아 조금 더 힘이 필요합니다. 장착 후 기본 벨벳은 노즐 끝까지 곧은 도관이 이어지고, 와이드보어는 이어폰 노즐이 끝나는 지점부터 곧바로 통로가 넓어집니다. 반대로 내로우보어는 이어팁의 끝부분이 노즐 도관 주변을 일부 가리는 형태예요.
PD10과 클라루스로 들어 본 소리 차이
세 가지 이어팁의 비교는 아스텔앤컨 PD10과 클라루스로 진행했습니다. 기준은 클라루스에 기본 제공되는 아즈라 SE2000이며 모든 팁은 M 사이즈로 맞췄습니다. 먼저 착용감은 SE2000이 귀에 조금 더 달라붙는 쪽이고 벨벳 3종은 한층 매트하고 부드럽습니다.

어느 쪽이 더 좋다기보다 취향의 차이입니다. 밀착감과 차음성을 우선하면 SE2000이 유리하고, 넣고 뺄 때의 이압이나 귀의 부담을 줄이고 싶다면 벨벳이 편합니다. 저는 끈적이듯 붙는 감촉을 좋아하지 않아서 벨벳 쪽이 더 잘 맞았습니다. 차음성이 아즈라팁 대비 조금 줄기는 하지만 음악 감상을 방해할 정도의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기본 벨벳을 끼우면 SE2000보다 무대가 살짝 열립니다. SE2000은 에너지가 중앙에 모이며 메인 음상에 초점이 또렷하게 맞는 성향입니다. 주변부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낮고, 저역의 깊이와 펀치도 중앙에 힘이 모이는 만큼 조금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반면에 기본 벨벳은 그 에너지를 좌우로 분산하면서 개방감과 화사함을 조금 더합니다. 음상 하나하나의 무게는 가벼워지고 저역의 집중력도 약간 줄지만 무대는 넓어집니다. 스피커와 좌석의 거리를 조금 벌린 뒤 볼륨을 한두 칸 높이는 것과 비슷한 변화예요. 핀포커스와 에너지를 원하면 SE2000, 보다 확산된 무대를 원하면 기본 벨벳이 어울립니다. 음색 자체를 크게 뒤집기보다 분위기와 거리감을 조절하는 차이에 가깝습니다.
화사함을 더하는 와이드보어

평소 와이드보어 팁을 좋아해서 듣기 전부터 가장 기대한 제품입니다. 기본 벨벳과 비교하면 중고역이 살짝 올라오면서 소리가 더 선명하고 깨끗하게 들립니다. 보어가 넓어지면 저역이 많이 빠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클라루스에서는 극저역과 저역의 양감이 눈에 띄게 줄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중고역이 열린 만큼 전체 분위기가 조금 더 시원해지는 쪽입니다. 드럼의 심벌처럼 중고역의 생동감이 중요한 소리는 와이드보어에서 한층 라이브하게 살아났고요. 클라루스가 조금 심심하게 느껴지고 약간의 MSG를 더하고 싶다면 재미있는 선택이 될 듯합니다. 곡에 따라 매콤한 맛을 추가하는 팁이라고 할까요.
다만 클라루스는 원래도 다른 이어폰보다 6~8kHz 부근의 딥이 덜한 듯한 성향입니다. 여기에 와이드보어를 더하면 간혹 화사함이 넘친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두고 무난하게 사용할 레퍼런스 조합으로는 기본 벨벳이 더 안정적입니다. 반면 와이드보어는 매일 쓰는 기본값보다 기분이나 음원에 따라 꺼내는 옵션에 가깝습니다.
정위감과 깊이를 살리는 내로우보어

내로우보어는 개인적으로 자주 쓰지 않는 형태입니다. 이어폰 노즐의 도관을 가리는 구성을 선호하지 않기 때문인데요. 예상과 달리 클라루스에서는 세 제품 중 아즈라 SE2000에 가장 가까운 균형을 들려줬습니다. 무대 중앙에 포커스가 모이고 개개의 음상에 집중하기 좋은 소리입니다. 기본 벨벳과 와이드보어보다 좌우 개방감은 줄지만 대신 전후 깊이 표현이 좋아집니다. 앞선 두 제품이 무대를 가로로 넓힌다면 내로우보어는 그 에너지를 뎁스와 입체적인 정위감에 사용합니다. 클라루스는 원래 무대가 답답할 정도로 좁지 않고 깊이 표현이 장점인 이어폰이라 이 방향이 의외로 잘 맞았습니다.
어느 대역에 힘이 과하게 실리거나 밸런스가 넘친다는 느낌도 적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고루고루 무난하게 잘하는 조합입니다. 그래서 저는 클라루스를 기준으로 순위를 정하면 기본 벨벳과 내로우보어가 공동 1등, 가장 기대했던 와이드보어는 밸런스 면에서 조금 아쉬워 3등으로 등수를 매기겠습니다.
개인 취향도 있지만 이어폰에 따라서도 어울리는 이어팁이 다 다르기 때문에 딱히 지금의 순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는 각각의 이어팁이 어떤 성격을 가지는지 참고 정도만 해 두시면 나중에 원하는 성향의 소리를 만들 때 도움이 되실 거예요. 멀리서 조금 더 넓게 듣고 싶다면 기본 벨벳, 음상 하나하나의 에너지와 입체적인 위치에 집중하고 싶다면 내로우보어를 추천합니다. 결국 같은 소재를 사용해도 마지막 몇 밀리미터의 도관이 무대의 모양을 제법 다르게 만듭니다.
사이즈까지 바꾸면 선택지는 더 늘어납니다

뜬금 없지만 저는 최종적으로는 내로우보어 ML을 골랐습니다. ML도 제 귀에 정착용이 됐고, 외경이 M보다 0.4mm 넓어서 이어폰을 살짝 바깥쪽에 고정할 수 있었습니다. 내로우보어의 에너지와 뎁스는 유지하면서 물리적인 무대 규모를 조금 키우려는 선택이었는데 실제로 의도한 변화가 나왔습니다.
엘로이트 이어팁이 다섯 단계로 사이즈를 세분화한 장점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이어팁을 단순히 귀에 맞느냐만으로 고르지 않고 이어폰이 고정되는 깊이까지 조절할 수 있습니다. 내로우보어가 마음에 들지만 무대가 조금 더 넓었으면 한다면 평소보다 한 사이즈 크게 착용해 보는 것도 시도할 만합니다. 다만 귀 모양과 이어폰 노즐 길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므로 무리하게 큰 팁을 사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총평

엘로이트 벨벳 3종은 무엇보다 착용감이 뛰어난 이어팁입니다. 셋 중 가장 무난한 제품은 기본 벨벳이에요. 이어폰의 균형을 크게 흔들지 않으면서 좌우 개방감과 편안한 거리감을 더합니다. 와이드보어는 중고역이 답답한 이어폰에 화사함과 생동감을 보태는 처방에 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내로우보어는 좌우 확장보다 중앙의 집중력, 정위감과 전후 깊이를 살리고 싶을 때 잘 맞습니다.
벨벳과 내로우보어는 여러 이어폰에 두루 활용하기 좋은 타입이고, 와이드보어는 개성이 더 분명한 만큼 매칭을 조금 가릴 만한 이어팁이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지만 그렇다고 이 결론을 모든 이어폰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번 평가는 PD10과 클라루스 조합에서 나온 결과이며 노즐의 직경과 길이, 이어폰 자체의 튜닝이 달라지면 변화 방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어팁에는 하나의 정답이 없습니다. 각 팁의 성향을 짧게 메모해 뒀다가 다른 이어폰에서 부족한 부분이 느껴질 때 알맞은 제품을 꺼내 쓰면 됩니다. 작은 액세서리 하나로 익숙한 이어폰의 무대와 질감이 달라지는 경험, 이게 이어팁을 고르는 재미입니다. 왜 그렇게 많은 분들이 이어팁을 잔뜩 모아 두고 사용하는지, 이 글을 통해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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