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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펀(Pink Faun) 듀얼 울트라 2.16
2026-03-07 · DIGITAL TRANSPORT

핑크펀(Pink Faun) 듀얼 울트라 2.16

디지털 신호의 순수함을 지켰을 때

잠실 아날로그라운지에서 열린 핑크펀(Pink Faun) 2.16 Ultra 청음회를 다녀왔습니다. 핑크펀의 대표인 Jord Groen씨가 내한하여 직접 진행한 이번 청음회는 디지털 스트리밍이 끝까지 가면 어느 정도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는지 검증하는 자리였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오늘의 주인공인 듀얼 울트라 2.16은 대중들에게 공개하는 건 이 자리가 전 세계 최초라 하니 나름 의미가 있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청음회의 주제라고 말해야 할까요. 혹은 핑크펀의 제품 철학이라고 해야 할까요. 요르트 씨의 진행 내내 내용을 관통하는 키워드가 뚜렷했습니다. 오디오의 그 어떤 분야보다 첨단을 추구하는 소스기, 그 중에서도 가장 앞단의 트랜스포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음악성'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시작이 다를지라도 마지막에 만나는 지점은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No sound, just music"이라는 멘트가 계속 기억에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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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펀은 2019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오직 트랜스포트만 만들어 왔다고 합니다. 오늘 소개된 듀얼 울트라 2.16은 이름처럼 두 덩이로 이루어진 순수 디지털 트랜스포트입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드를 다시 서버(플레이어)와 렌더러(출력 모듈)로 분리하는 것은 굉장히 호화스러운 구조라 하겠습니다. 요르트 씨는 두 파트를 두고 "플레이어는 데이터를, 렌터러는 디지털 오디오를 처리한다"고 말하더군요. 여느 분리형 제품들이 그렇듯 이 제품도 노이즈가 많이 발생하는 제어부와 신호 처리부를 완전히 독립시켜서 보다 깨끗한 신호를 보장하겠다는 의도입니다만, 이러다 보니 갈수록 오디오 랙에 쌓아야 할 제품의 수가 많아지는 것도 하이엔드 유저들에게는 부담이 되긴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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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오디오 브랜드들이 그렇듯 핑크펀도 진동, 전원, 타이밍 이 세 가지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적절하게 제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기술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진동 제어를 위해 알루미늄 블록을 CNC 가공으로 깎아 내는 모노코크 섀시를 사용하고, 기판은 벌집 모양의 허니컴 메인보드 플래터 위아래로 배치됩니다. 본의 아니게 지난 타옥 청음회에 이어 이번에도 허니컴 구조를 만나게 됐는데 이를 사용한 이유는 동일합니다. '진동 제어', 그리고 '발열 관리'입니다.

클록은 2.16 듀얼 울트라의 핵심 파트 중 하나입니다. 제조사는 초정밀 울트라 OCXO 클록을 탑재해 25MHz 기준으로 10Hz 오프셋에서 −135dB 수준의 낮은 위상 노이즈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또한 클록 전용 5,000,000µF 초대형 슈퍼커패시터 전원을 사용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모듈형으로 구성된 개별 출력단마다 출력단 특성에 맞는 클록이 사용됩니다. 따라서 2.16 울트라에는 25MHz의 마스터 클록과 출력 모듈의 수만큼의 개별 클록이 장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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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음회 당시 이 부분에 대해서 청음회에 참석한 분들과 요르트 씨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제가 이해한 것으로 정리하자면 클록의 타이밍을 맞추기 위한 PLL(Phase-Locked Loop)를 사용하는 대신 굉장히 짧은 버퍼를 두고 개별 출력단마다 그에 맞는 클록을 사용합니다. 그럼으로써 클록 동기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터를 없앨 수 있지만, 대신 모듈마다 클록을 달아야 하기 때문에 출력 모듈의 가격이 올라간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정도 급의 기기에서 가격을 단점으로 꼽는다는 게 좀 이상하긴 하네요.

시연 중간 중간 기술적인 내용을 섞어서 언급했지만 정리를 위해 기술적인 내용을 먼저 언급했고요. 이제는 곡을 들으면서 메모해 둔 소감을 그대로 옮겨 오겠습니다.

첫 곡: Diana Krall – A Case Of You

부드러운 피아노와 섬세한 보컬이 어우러진 곡으로, 소리 사이의 여백과 잔향을 통해 시스템의 정숙성을 확인하기 좋았습니다. 첫 음이 울려 퍼질 때부터 자연스럽게 공간에 흐르는 잔향을 통해 연주되는 무대가 눈앞에 그려지고, 피아노 타건 질감과 울림, 보컬의 호흡 소리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전달되면서 소위 디지털스럽지 않은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질감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곡이 달라져도 이후의 감상평은 거의 동일합니다. 제가 느낀 오늘 청음의 키워드는 "섬세함"이었습니다. 하이엔드 디지털 기기일수록 잔향과 감촉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중요한데, 오늘의 청음회 소리는 음 하나하나 허투루 다루는 것 없이 아주 미세한 음까지 놓치지 드러내는 섬세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번째 곡: Grant Green – Sookie Sookie (Live)

소규모 공연장 분위기와 드럼의 그루브를 느낄 수 있는 트랙으로, 무대 뒤편의 드럼에서 킥 드럼과 심벌의 울림이 귀에 잘 들어오더군요. 다소 작은 무대와 날것 같은 녹음이 오히려 현장감 있는 생생한 소리로 들렸습니다. 하이파이라는 것은 담겨진 것을 있는 그대로 꺼내는 것이라는 걸 다시 느꼈던 순간이었고요. 형성되는 무대 자체가 넓지는 않아도 앞선 곡과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사그라드는 끝음 처리, 특히 고역의 사그락거림은 어떤 악기를 들어도 생생함은 살리되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세 번째 곡: Steve Gadd Band – Way Back Home (Live)

같은 라이브 무대임에도 스티브 개드 밴드의 라이브 트랙에서는 이전 곡과는 또 다른 현대적 음질과 넓은 무대가 펼쳐졌습니다. 킥드럼은 더욱 무겁고 풍성하게 울리면서 중심일 잡았고, 관악기의 카랑카랑한 음색이 시원하게 뻗어 나갑니다. 비단 트랜스포트만의 덕이라고 볼 수 없겠지만 깨끗한 시작점 덕분인지 다이나믹스 표현, 그 중에서도 약음 표현은 정말 어떤 곡을 들어도 돋보였습니다.

네 번째 곡: Yosi Horikawa – Fluid

전형적인 오디오파일 테스트 곡으로 물방울 소리를 비롯한 다양한 타악기의 질감이 가득한 곡이었습니다. 오늘 청음회의 장점, 질감 표현력이 한층 빛난 곡이기도 합니다. 제목처럼 다양한 물의 흐름을 표현하는 파트가 이어지는데, 작은 물방울이 튀는 듯한 소리부터 비처럼 쏟아지는 소리, 여기에 현악기와 퍼커션까지 더해지면서 정말 다채로운 소리가 이어집니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입체적인 소리들이 별처럼 펼쳐지면서도 끝음의 처리와 여운이 깔끔하게 이어져서 누가 듣더라도 고해상도, 고정보량의 재생 품질이라고 느낄 만한 소리였습니다.

다섯 번째 곡: Bliss – Song for Olabi

일렉트로닉 장르라고 하지만 여전히 이전 곡들과 분위기는 비슷합니다. 다만 상대적으로 이전 곡들에 비해 낮게 깔리는 극저역이 귀에 들어오는데 이마저도 여전히 강력한 에너지보다는 부드럽게 몸을 감싸는 듯한 잔잔한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덕분에 극저역도 너무 무겁지 않은, 조용한 웅장함이라는 조금은 낯선 표현이 어울리는 소리였습니다.

여섯 번째 곡: A.R. Rahman – Dacoit Duel

오늘 시연에서 처음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제법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곡이어서 시스템의 응답성과 스피드를 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곡에서도 여전히 끝음 처리는 부드럽게 유지하면서 빠른 템포의 악기들이 현란하게 쏟아지는데도 개개의 소리들이 날카롭게 치솟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힘을 뺀 채로 자연스러운 뉘앙스를 전달하려는 듯해쑈고요. 덕분에 영화관처럼 거대한 스케일로 표현하면서도 마치 색연필로 채색한 듯한, 오래 들어도 부담이 없는 소리였습니다. 다만 강력한 한 방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에너지가 조금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어지는 클래식: 현악 사중주와 오페라

클래식 트랙에서 오늘의 시스템이 가지는 장점이 가장 잘 드러났습니다.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 현악 사중주 편곡에서는 각 악기가 뚜렷하게 분리되면서도 전반적으로 무대가 뒤쪽으로 물러서서 형성되면서 마치 전체를 한 눈에 관망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관객과 무대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 떨어질 때, 잘 만든 시스템에선 그 여백에서 정숙성과 현장감, 그리고 슬쩍 슬쩍 드러나는 고운 입자감을 통해 오디오적인 쾌감을 얻곤 합니다. 이번 무대가 그랬습니다.

조용한 곳에서 아주 미세한 소리만으로도 광활한 개방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출중했습니다. 마리아 칼라스가 부른 ‘Casta Diva’에서는 볼륨을 올려도 음상이 과하게 부풀지 않고 쭉 앞으로 뻗어나왔는데, 이것 역시 결국은 질감, 해상력으로 인한 결과물일 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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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라운지에서 열린 이번 청음회는 청음샵의 이름과 달리 디지털로 끝까지 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시간이었습니다. 청음회에서 들은 다양한 음악들이 일관되게 고요하고 섬세해서 청음회 시작부터 말한 '음악성'이 무엇인지 소리로 들려 줬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밌던 건 핑크펀 대표 요르트 씨가 시연을 진행하는 내내 곡의 볼륨이 여느 청음회들에 비해 조금 작게 잡는다는 점입니다. 보통 청음회에서는 보다 극적인 쾌감을 위해 청음실을 가득 채울 만큼, 가정집에선 올리기 어려운 정도로 볼륨을 올리기 마련인데 이번 청음회는 딱 집에서 듣기 적당한, 그러니까 청음회들에서 듣는 것보다 제법 많이 작게 진행됐습니다.

이런 데에서 요르트 씨의 평소 음악 성향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이런 부분이 제품 소리에 반영되는 게 아닐까 싶었어요. 여유로움, 조용함, 디테일한 표현력 등. 덕분에 여느 청음회와는 또다른, 아주 매력적인 소리를 듣고 왔습니다. 특유의 질감이 여운이 남네요. 내일도 같은 시간에 청음회를 진행한다고 하니 시간 되시는 분은 방문해 보시길 권합니다.

#리뷰#STREAMER#PINK FAUN#하이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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